상리고진 관광을 마치고 야안을 지나 루딩이라는 곳으로 올라간다.
이제부터는 해발이 상당히 높아진다.
고갯길이 높고 많아 타이어와 브레이크 과열을 예방하기 위해 차에 물을 넣고 바퀴에 뿌리면서 간다.
곳곳에 돌무더기가 떨어진 곳이 많다. 낙석이 많아 위험한 길이다.
지난주 폭우로 도로 곳곳이 엉망이고 산사태 위험이 있는 곳도 지나 루딩으로 간다.
해라구 에서 풍경구로 가려면 위사진에 있는 이랑산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지나면 바로 루딩 톨게이트가 나온다. 그리고 터널을 지나니 지금까지의 풍경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또한 고산이어서 그런지 기온도 한층 서늘해져 초가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드디어 작은 루딩 시가지에 도착했다.
높은산으로 둘러 싸여 보이는 곳이라고는 하늘 밖에 없는 이곳이 루딩은 중국의 근대사에 한 획을 그었던 도시이다. 이 곳에 내려 먼저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22인 용사탑이었다.
루딩에는 차마고도를 따라 끊임없이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인 대도하를 가로지르는 굵은 쇠사슬로 만들어진 다리 '루딩교(瀘定橋)' 가 있다. 루딩교는 옛 전쟁의 흔적이 남겨진 곳 이다.
루딩은 티벳구역으로 가기전 마지막 한인(汉人)구역이란다.
루딩교는 일찍 청나라 강희년간 (1705)에 만들어졌으며 루딩교 앞에 (泸定桥)라고 강희황제의 친필이 적혀져 있다. 이 다리의 길이는 103미터이고 넓이는 3미터 모두 13개의 쇠사슬로 만들어졌으며 다리의 총 무게는 40톤이 넘는다.
1935년5월29일 모택동이 거느린 홍군이 루딩교를 건느다 장계석 국민당군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국민당군은 홍군이 다리를 건너 못오게 다리위의 나무발판을 불로 태워 없앴고 맞은 편 보루에서 기관총으로 저항하였다. 홍군은 22명의 투사로 묶은 선봉대가 쇠사슬위에 매달려 국민당군들이 쏘는 총알을 맞받아 공격했는데 나무발판을 들고 육탄으로 총알을 받으며 희생한 병사가 2400명... 끝끝내는 루딩교를 정복하고 대도하를 건넜다고 한다.
미군이 지지하던 장계석이 이겼더라면 지금의 우리나라가 어떠했을까??
중국인 젊은이들이 당시의 복장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광장 한쪽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는데 장기판과 알의 크기가 엄청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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